“몸 넣고 기름칠하다" 참변 당한 SPC 노동자

 경기 시흥에 위치한 SPC 삼립 시화공장에서 또 다시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19일 새벽 3시경,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 A씨(56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A씨는 뜨거운 빵을 식히기 위한 대형 원형 선반 기계에서 윤활유를 뿌리던 중 변을 당했다. 해당 기계는 여러 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선반을 회전시키는 하단 벨트의 틈에 몸을 넣은 채 작업하던 중 갑작스럽게 기계가 작동하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직후 공장은 즉각 작업을 중단했으며,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시흥경찰서도 사고 경위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A씨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진술을 통해, 컨베이어벨트가 삐걱거릴 경우 종종 몸을 넣고 기름칠을 해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러한 작업 관행이 안전 수칙에 부합했는지 여부와 함께 현장에 안전장치나 경고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사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공장 내부 CCTV를 확보해 분석 중이며, 안전관리 책임자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SPC 계열사의 반복되는 산업재해 중 하나로, 그동안 제기되어온 현장 안전관리 부실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2022년 10월에는 같은 SPC 그룹의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앞치마가 빨려 들어가며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기계에는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는 방호장치가 없었고, 2인 1조 작업 수칙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손이 끼여 20분간 고통을 호소하는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8월 SPC 샤니 성남공장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50대 여성 노동자가 반죽 리프트 기계를 작동하는 도중 다른 반죽통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계에 끼어 심정지 상태에 빠졌고, 병원 이송 후에도 끝내 숨졌다. 당시에는 2인 1조 수칙이 지켜졌으나, 함께 일하던 동료가 기계 하단에 있던 피해자의 위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남 공장 또한 사망 사고 이전부터 직원들의 손가락이 기계에 끼이거나 골절되는 사고가 반복돼왔다.

 

 

 

이처럼 SPC 계열사의 공장에서는 반복적인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고 유형과 희생자의 특성에서도 공통점이 나타난다. 위험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물리적인 부담이 큰 작업을 수행하다 사고를 당한 사례가 다수다. SPL 평택공장 사고 당시 노동조합은 “배합 수당이 지급될 정도로 과중한 공정에 여성 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데 대한 현장의 불만이 누적돼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SPC 측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해왔다. 평택 사고 이후엔 그룹 차원의 안전관리 강화와 함께 1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번 시흥 사고 직후에도 SPC 삼립 김범수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발표됐다. 회사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를 전하며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과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망사고에도 불구하고 SPC가 제시한 안전관리 대책이 실제로 현장에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SPL 강동석 전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올해 1월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오세형 부장은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 위험 공정이 상존하는 만큼 현장의 밀착 감시와 관리가 중요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본래 취지대로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재발 방지에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SPC 계열사의 사고들은 단순한 현장 과실을 넘어, 구조적인 안전불감증과 경영진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